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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길을 갈때


우리 신앙의 길도 이런 고민과 갈등과 어려움과 고통의 시간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임에도 무엇인가 잔뜩 짊어지고, 한가득 수레에 올려두고 끌고 가는 욕심많은 우리의 모습이 교차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내려놓으라 하실때 잡고 있던 손아귀에서 먼지 하나 떨어질라치면 그동안 애지중지 모아둔 것을 다 잃어버린 양, 내 목숨마저 없어지는 거 같은 어리석음과 두려움에 절절거리며 순종은 커녕 수고한 나의 노력을 받아내려는 모양새로 하나님께 강한 불만과 원망을 쏟아내버린다.

아브라함이 걸어갔던 삼일길은 단순히 72시간이 걸리는 수적인 시간 개념 도입과는 다르다. 20시간 30분이면 도달하는 거리를 72시간(사흘길을 꽉 채웠을 경우)이 걸렸다는 문장 하나에 수많은 생각과 믿음에 대한 가치를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에게 "순종"은 무엇인지,

가는 길을 어서 가라고 재촉하지 않는 하나님,

무거운 발걸음을 떼면서 사랑하는 아들때문에 마음으로 몰래 가다 울고 가다 우는... 아버지 아브라함...

고령의 나이에 육체적 노동이 천근만근이기 보다 아들을 잃는다는 마음의 고통이 천근만근.

죽는다해도 다시 살리실 하나님을 믿었다는 히브리서 말씀이 있지만 얼마나 많은 갈등이 했길래 가는 길이 그리 오래 걸렸을까...

인간의 믿음은 아무리 굳게 믿는다해도 여전히 흔들리고 나약한 상태다.

완벽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며 우리에게 그런 믿음의 훈련을 시키시는 것 뿐이지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주를 뵙고 주와 함께 있을 천국에서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나는 온전한 믿음이다, 나는 완벽한 믿음이다'가 아니라 이렇게도 연약하고 부족한 나에게 완전한 예수때문에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은혜다.

아브라함은 연약한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아브라함을 하나님 반열에 올릴 생각을 하지 말라.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무엇을 행하자"라는 설교는 하지도 말라. 이런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은혜로 순종하게 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이지 아브라함이 대단하고 수준 높은 어떤 무언가가 발휘되었다고 해석하지 말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긴 귀감의 믿음의 조상일 뿐이지 아브라함의 순종이나 행함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사흘길을 갈때.. 비록 마음이 찢어지는 순례의 길이더라도 그리스도 예수안에 답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은혜도 주님이 주신다.

사흘길을 걷는다해도 재촉하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충분히 걸으며 위로하시면서 은혜를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걷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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