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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에 기초한 믿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씀들을 어느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쉽고,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묵직하게 말씀을 전하시는 하용조목사님.

하용조목사님의 설교를 간추리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고, 청중으로서 설교자를 보는 관점의 글입니다.

청중은 설교자의 말한마디 뉘앙스까지도 듣고 해석하게 됩니다. 문장 한마디를 들을때 저 말씀이 설교자가 경험했고 살아가고 있는 말씀인지, 그저 적혀있는 문장을 읽는 말씀인지 금새 알아챕니다.

이를테면, 드라마를 보더라도 배우의 연기에 몰입시키는 사람이 있는 가 반면, 발로 연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처럼 장면 속으로 몰입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청중은 그 대사 하나하나의 분위기를 공감하면서 대리만족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도에 있어서 설교자와 연기자는 어느 정도 수긍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설교는 설교자의 열렬한 연기력으로 은혜를 끼치지 않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리하는 성언운반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언운반자로서의 설교자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청중으로서의 역할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런 미묘한 갈등 사이에서 강단 앞에 서 있어야 하는 사람이 설교자인 것입니다.

설교자는 성경에서 이미 설득된 논리를 재입증시키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내 삶에서 어떻게 입증시킬 것이냐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청중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설교는 먼저 나 자신을 위한 주님의 말씀이고, 나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려거나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고 비판하거나 고치려고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설교자에게 먼저 그 말씀대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용조목사님의 말씀이 실제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하목사님의 신학적 이론을 바탕에 두고 그 말씀에 대한 당황, 고민, 갈등을 겪었고 그 경험담을 전하고 있는 거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전적 정의나 개념 설명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를 안다"는 것은 주민등록상의 정보만 아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제 존재하고 있는 나를 만나고 교제하는 것을 "안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말씀의 신학적인 기초 범위 안에서만 허용됩니다. 어떤 신비적인, 황홀경만을 가지고 누군가를 설득시켜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주관적인 것이고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누군가에게 진실되게 다가오는 것은 화려한 미사어구와 세련되고 논리정연한 문장을 전해서가 아닙니다. 말을 더듬는다 해도, 몸이 불편하더라도, 목소리가 좋지 않다 해도, 의복이 변변치 않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사귐, 친밀한 교제는 설교자의 분위기에서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드러내려고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분위기입니다. 그 분위기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진실한 만남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말씀을 다양한 방법으로 파헤치는 연구도 필요하지만, 그 말씀으로 주님을 만나고 있지 않으면 '정보'에 불과한 것입니다. 청중들이 몰입하는데 부족하게 됩니다. 정보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제가 부족한 사람인지,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를 보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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